“역사에 꼭 기록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증언하겠다. 고종 황제는 결코 일본에 항복하지 않았다. 굴종하여 신성한 국체를 더럽히지도 않았다. 휜 적은 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미국에 협조를 구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유럽 열강에 밀서를 보냈으나 강제 퇴위당하여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고립무원의 군주였다. 한민족 모두에게 호소한다. 황제가 보이신 불멸의 충의를 고이 간직하자.”
- 호머 헐버트 박사, 1942, 워싱턴 한인자유대회
증조부 고종 황제께서 주권 수호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고 1905년 을사늑약에 국새를 찍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고종이 주권 수호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은 잠자는 우리 민족을 일깨워 3.1독립만세 항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증조부님의 주권 수호 의지가 3.1독립만세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고종 황제께서 만드신 국호 '대한'과 조선의 국기 태극기를 그대로 계승받아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 평화 통일의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의 대한민국, 삼천리 강산에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펄럭일때 진정한 독립을 이루고, 광복을 이룬다는 것이 의친왕 조부님 말씀이셨습니다.
다시 한번 광복 80주년의 막월을 지내며 그 의미를 깨닫고, 우리 세대에서 하나의 대한민국 통일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대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여러 송년모임에서 다짐합니다.
고종황제 장증손
이준 황손
#한글 #헐버트 #훈민정음 #고종황제 #이준 #의친왕
“역사에 꼭 기록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증언하겠다. 고종 황제는 결코 일본에 항복하지 않았다. 굴종하여 신성한 국체를 더럽히지도 않았다. 휜 적은 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미국에 협조를 구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유럽 열강에 밀서를 보냈으나 강제 퇴위당하여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고립무원의 군주였다. 한민족 모두에게 호소한다. 황제가 보이신 불멸의 충의를 고이 간직하자.”
- 호머 헐버트 박사, 1942, 워싱턴 한인자유대회
증조부 고종 황제께서 주권 수호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고 1905년 을사늑약에 국새를 찍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고종이 주권 수호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은 잠자는 우리 민족을 일깨워 3.1독립만세 항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증조부님의 주권 수호 의지가 3.1독립만세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고종 황제께서 만드신 국호 '대한'과 조선의 국기 태극기를 그대로 계승받아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 평화 통일의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의 대한민국, 삼천리 강산에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펄럭일때 진정한 독립을 이루고, 광복을 이룬다는 것이 의친왕 조부님 말씀이셨습니다.
다시 한번 광복 80주년의 막월을 지내며 그 의미를 깨닫고, 우리 세대에서 하나의 대한민국 통일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대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여러 송년모임에서 다짐합니다.
고종황제 장증손
이준 황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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