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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구 씨는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사람이다

2016-03-18
조회수 680

작성자  노중평 작성일  2007-09-28 조회수  360


류승구씨는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사람이다
조회(216) 문학 | 2006/11/09 (목) 00:05

 


류승구 씨는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사람이다 노중평 나에게는 류승구라는 이름보다 유승엽이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그를 처음 만날 때 그는 자신을 유승엽이라고 소개했고, 우리는 [역사천문학회]를 만들면서 10년 세월을 유승엽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나기 전에 나는 [한배달]이라는 단체에 발을 들여 놓았다. 내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인사동에 있는 사회단체 [한배달]에서 금문金文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를 만나보고 싶은데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만날 수 있다”고 대답하고, “마침 내가 한배달이라는 단체에서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으니, [한배달]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가 [한배달]로 나왔고, 그래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한배달]에서 금문· 천문· 한단고기· 주역 등을 공부하며 교분을 쌓아갔다. 그러다가 중국을 다녀오기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아무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땅인 탁록· 보계· 천수를 처음 답사하였다. 탁록은 치우천왕의 유적을 찾아갔던 것이고, 보계는 복희의 유적을 찾아갔던 것이고, 천수는 신농의 유적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 외에 한국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은 태백산에 4번째로 다녀왔고, 천산에도 2번째인가 다녀왔다. 우리가 <한단고기>를 통하여 '상고시대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중국에 다녀와서 결성한 것이 [역사천문학회]였다. 제봉 김세환 선생이 회장을 맡고, 나와 이승평 교수가 부회장을 맡고, 유승엽씨가 총무를 맡았다. [역사천문학회]를 만들면서 우리는 금요일에 만나서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마치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며 담론을 벌이곤 하였다.


우리의 모임을 주선해 온 사람이 유승엽씨였다. 내가 [강북문화원]에서 삼각산축제를 기획하여 강북구민의 잔치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구민의 축제를 만들었을 때 유승엽씨는 김용자씨와 함께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분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삼성제례三聖祭禮]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은 나와 그가 관여를 하지 않아도 [삼성제례]가 자리를 잡아 뉴스에도 나오고 세상에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김용자씨는 지금도 팽주로서 시자를 데리고 제사를 돕고 있다. 김용자씨는 이 제례를 기초로 하여 <제례진설에 관한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하였다.


나와 유승엽씨와 박송희씨는 [삼성제례] 이외에도 유승엽씨가 사는 부암동 산에서 10년 세월을 매년 자시子時에 [칠석제]를 지내왔다. 비용은 모두 유승엽씨가 부담했고, 헌다는 박송희씨가 담당했고, 나는 홀기를 맡아 하였다. 3인이 주동이 되어 이 일을 해 온 것이다. 재작년(2005년)에 박송희씨가 [칠석제]를 광화문으로 가지고 나가 큰 행사로 벌였을 때도 이 [칠석제]를 도우면서 전날 자시에 부암동에서 전에 하던 대로 따로 제사를 지냈다. 이 외에 세상에 알리지 않고 3월과 10월에 유승엽씨가 홀로 [천제]를 지냈고, 이 일에는 나와 김용자씨가 참가하였다. 누가 보면 제사지내는데 미친 사람들처럼 행동하였다. 2년 전부터 이귀선씨가 가세하면서 나와 김용자씨는 떨어져 나왔다. 그가 이귀선씨와 만나면서 몇 사람이 모여 국회의원 선거에 임박하여 [시민당]을 창당하였다.


창당을 하기 전에 부암동 산에서 창당 멤버들이 천제를 지냈다. 이때도 내가 갑자기 홀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가 주동이 되어 창당을 하게 되었고,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가 내게 [시민당] 홈페이지를 만드니까 홈페이지에 올릴 칼럼을 써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해 달라는 대로 긴 글 11편을 써서 <시민당 홈페이지>에 올려주었다. 그 글이 인터넷에 있어 클릭하면 읽을 수 있다. 그도 [시민당] 정책에 관한 글을 써서 올렸다. 그가 나를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도운 보답을 한 것이다. 그는 무용가인 이귀선씨를 [시민당]의 ‘서울시장후보’로 내세웠다. 물론 낙선하였지만, 다른 사람은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을 하였다. 만약 이귀선씨가 시장에 당선했다면, 그에게서 대한민국을 살릴 만한 획기적인 정책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0년 동안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석하고 비평하는 능력을 타고 났고, 남이 생각지 못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놀라운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직관적인 사유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는 분석적인 사유에 능하여 서구적인 사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양적인 직관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고 있어, 대단히 훌륭한 장점을 지닌 재사였다. 칼을 빼면 무라도 잘라 본다고, 그는 인천의 모 지역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시민당] 사무총장의 자격으로 출마하였다.


그에게는 한나라당· 열린 우리당· 민주당 후보와 같은 지원유세 없이 홀로 이 시대의 돈키호테처럼 싸웠다.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그가 발표하는 정견을 읽었다. 그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낙선이다. <시민당>이 인지도가 낮으니 낙선은 예상했던 대로라고 하겠다. 앞으로가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늘 내게 호의를 가지고 대해 왔던 그에게 위로라도 좀 됐으면 하고 쓴 글이다.


인생사는 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요, 돈키호테가 낡은 칼을 휘두르며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데, 그의 인생이 돈키호테인생으로 끝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가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